다낭 정보

다낭(沱㶞 베트남어: Đà Nẵng/ 沱㶞 타낭)은 베트남 남중부(베트남어: Nam Trung Bộ) 지역의 최대 상업 및 항구도시이자 베트남의 다섯 개의 직할시 중 하나이고, 베트남에서 호찌민 시하노이하이퐁 다음으로 네 번째 큰 도시이다. 면적은 1,285.53 제곱킬로미터, 인구는 약 752,493명(2014년)이다.

역사

다낭의 이름은 참어(Cham語)의 Da Nak에서 유래하는데, 이는 "큰 강의 입구"라는 뜻이다. 이 곳의 기원은 192년 말레이계인 참 족 거주자가 세운 참파 왕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때부터 다낭은 참 족의 중요 거점으로 번영을 누렸다.

1847년, 두 명의 프랑스인 선교사들(베트남에 은밀히 들어갔다가 두 번째로 수감된 도미니크 레페브르 주교와 뒤클로스)이 수감되자 이들을 구출하고, 베트남에서 가톨릭 포교의 자유를 얻어내기 위하여 프랑스 해군의 장바티스트 세실은 2대의 전함(글르와르, 빅토리외즈)과 라피에르(Augustin de Lapierre) 대령을 다낭에 보냈다. 만약 라피에르 대령이, 레페브르 주교가 이미 자유의 몸이 되어 싱가포르로 가는 길이었다는 점을 미리 알았더라면, 라피에르는 베트남의 배들의 마스트를 해체함으로써 공격을 개시하지 않았을 것이다. 협상이 아무 성과없이 결렬되자 결과적으로 1847년 4월 14일, 프랑스는 다낭 항에 정박중이던 나머지 다섯척의 황동 갑판으로 되어 있는 배들을 침몰시키는 공격을 이어갔다. 1847년 4월 15일, 프랑스 함대와 베트남 배들 간의 전투(투란 포격)가 벌어져, 베트남 배들 중 세 척이 침몰하고 프랑스 함대는 도망쳐 나왔다.

1858년, 프랑스는 카톨릭 선교사들에 대한 베트남 조정의 박해를 응징하고, 베트남 조정에 프랑스군 주둔을 강요하고자 전쟁 개시를 승인하였다. 이로써 1858년부터 베트남과 프랑스는 전쟁에 돌입하였다. 1858년 9월 1일, 나폴레옹 3세의 명령으로 프랑스 해군은 리고 드 주누이 제독 지휘 하에 징벌적 코친차이나 전역의 일부로 다낭을 점령하였다. 이 때부터 다낭은 토우라네(Tourane)이라고 불렸다. 다낭은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의 5대 도시의 하나가 되었다.

1963년 베트남 전쟁이 발발하자, 다낭은 남베트남 군과 미군의 주요한 공군 기지로 활용되었다. 그때부터 다낭의 인구는 1백만명이 넘게 증가하였다. 1968년 ‘후에 전투’의 여파로 후에에서 많은 사람들이 다낭으로 피신하였다.

1997년 이전에 다낭은 꽝남-다낭 성의 일부였다가, 1997년 1월 1일 베트남의 네 번째 직할시가 되면서 꽝남 성과 분리되었다

문화

다낭의 역사는 약 300년 정도 거슬러 올라간다. 베트남의 문화가 존재한 4천년에 비하면 비교적 신생 지역이라 할 수 있다. 다낭에는 〈참 조각 박물관〉(the Museum of Cham Sculpture)과 옛 사원들이 있다. 다낭 시내에서 유일한 볼거리로 꼽을 만한 참조각박물관은 지난날의 화려함을 대변하는 곳이다. 1915년 프랑스국립극동연구원에서 설립한 참 조각 박물관은 참족과 관련된 박물관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 박물관을 지은 이래 소소한 수리만 해온 탓에 전시의 짜임새는 떨어지지만, 참족이 남긴 정교하고 아름다운 300여 점의 조각품을 볼 수 있다. 다낭 대성당(Chính Tòa Đà Nẵng)은 1923년 프랑스인이 세운 천주교 성당으로서, 다낭 건축물의 상징격이다. 특히 중세 유럽풍의 외부장식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한국의 멀티플렉스 영화관 롯데시네마는 다낭 지역에 운영 중인 영화관을 인수하여 3개의 스크린을 확보하였다.

관광

관광은 다낭 경제의 중요한 영역 중 하나이다. 베트남 중부의 교통 허브로서의 지위와 후에 성호이안의 고대도시, 미선 유적지 등을 포함한 여러 유네스코 세계유산 유적지와의 접근성으로 인해 관광 산업이 활성화되고 있다.

미선 유적지는 꽝남 성에 있는 천년 이상 된 고고학 유적지이다. 다낭에서 서쪽으로 약 70km 떨어진 곳에 있는 숲이 우거진 계곡에 위치해 있다. 이곳은 참파 왕국의 도성이자 종교적 중심지로 한때 70개의 화려한 사원과 탑이 있었다. 1960년대의 폭격으로 인해 심하게 손상을 입었지만, 여전히 20개가 넘는 건축물이 남아있으며, 199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미선에서 복원된 많은 조각상과 조각품 및 복원품이 다낭 중심부 근교의 한 강 근처에 위치한 참 조각 박물관(Museum of Cham Sculpture)에 보관되어 있다. 4세기부터 14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연대를 가지고 있으며, 이 관능적인 작품들은 힌두교와 불교의 종교적 주제뿐 아니라 일상 활동을 그려내고 있다.

응우한썬(대리석 산맥) 남쪽 다낭의 해변에는 돌출된 바위투성이의 석회암 노두이다. 길은 숲이 우거진 절벽의 꼭대기로 이어져 있어 논누억 해변과 남중국해의 장관을 감상할 수 있다. 절벽에 자리 잡은 동굴은 원래 참 족이 거주하던 곳이었다. 이후 응우옌 왕조는 동굴들 사이에 수많은 탑을 세웠다.

대리석 산맥은 논누억 마을을 기반으로 조각과 예술품을 제작하는 수 많은 장인들의 고향이기도 하다. 논누억 해변은 다낭의 외곽에 있는 백사장으로 베트남 전쟁 동안 미군의 휴양지로 이용되었으며, 탁월한 아름다움과 역사로 유명하다. 오늘날, 해변은 북쪽에 있는 미케 해변과 함께 빼어난 리조트와 서핑, 위락 시설이 있는 곳이다. 바나 힐즈는 케이블 길이가 5km를 갖춘 산악 리조트로 해발 1487m의 바나 봉까지 운행한다. 시내 중심가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 손짜 산에는 자연적인 개울이 있고, 해변을 따라서는 리조트가 있다.